<카이로 고고학 박물관>은
카이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타흐리르 광장의 북쪽,
그리고 카이로 최대의 버스 터미널 맞은 편에 있다.
5300년전에서 3500년전의 유품 13만점이 소장 되어 있다고 했다.
박물관 내부에서는 일체 사진 촬영이 금지 되었기 때문이다.
10년전엔 돈을 더 주면 찍게 해줬다는 얘기도 있던데...
<엠병 미스터 코닥은 니나 해라>
애 꿎은 알프레드 한테 우리말로 짜증을 냈다.
게다가 가이드도 동행을 못한다고 했다.
안에는 전속 가이드맨이 있으니 그 설명을 들으라는것이다.
(정말 엠병이다 일찍이 기회가 있었거늘 왜 영어도 일본어도
못했던가? 젊은이들이여 늙어서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이명박 당선인 따라서 영어 하나만이라도 열심히 배우라)
고고학 박물관은 상하 2층으로 되어 있고
전시실 숫자도 100개가 넘는다고 했다.
우선 1층을 보자.
훔쳐온 사진이다
아니 정확히 얘기 하자면 SBS PD로 있는
이재경님의 홈피에서 빌려온 사진이다.
사진을 못찍게 한다더니 웬 카메라들?
하하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을때 사진이다.
또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봤더니
<이룸>의 <푸른파도>님의 홈피에도 1층 사진이 있었다.
왕조별로 전시 되어 있는 대형 유물들 사이에
너무도 작은 유물이 있었다.
높이 7.5센치미터의 좌상.
현재까지 발굴된 피라미드중에서 가장 큰게
기자 지방에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트다.
높이가 146.5미터(현재는 137.5미터)나 된다.
이 쿠푸왕은 4500년전에서 4600년 사이에
이집트를 통치한 왕이다 재위 50년.
무덤은 그렇게 크게 만들었는데 전해진 유물이란것이
상아로 된 작은 좌상 한 개뿐이다.
위에 있는 사진이 쿠푸왕의 좌상이다.
허어..... 범소유상에 개시허망이로다.
2층 전시실에서 단연 압권은
투탕카맨의 황금 마스크다.
(만득애비님이 올린 <이집트의 신비>를 보면
소년왕 투탕카맨에 대해서 잘 나와 있다)
1922년 11월에 영국의 카나본경과 하워드카터가 발견 했다고 한다.
발견 당시 관 뚜껑엔
<파라오의 잠을 깨우는 자에게는 죽음의 저주가 내리리라.">
그래서 그랬는지 카나본경은 카이로에 있는 콘티넨탈 호텔에서
의문사를 했다.
그의 죽음을 조사한 의사들은
모기에 물린 후 합병증을 일으켜 죽었다 고 하였다.
그러나 카나본 경의 왼쪽 뺨에 물린 모기 자국과
투탕카멘 왕의 미이라 왼족 뺨에 벌레 물린 자국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어쨌던 도굴꾼들에 의해서 모든 고분이 훼손 되었는데
10세에 등극하여 18세에 사망한 이 소년왕의 고분만은
용케 보존 되었고 그의 유품 전량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이런 경우는 전 세계에서 이곳 뿐이라고 한다.
모두 순금이다.
특히 관은 110.4키로그람의 순금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는데도 또 입장료를 받는곳이 있다.
미이라실이다.
다른데는 덥지만 이곳만은 시원한 에어콘 장치가 있어서
<입장료 위에 또 입장료>라는 불만을 많이 해소해 주었다.
<크리스티앙 쟈크>의 장편소설 <람세스>를
옛날에 읽었기 때문에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람세스 2세의 미라를 보았다.
20세 약관에서 즉위하여 80세가 넘도록 왕위를 지킨
입집트의 카리스마..
누군가가 <살아 있는것 같았다>고 기행문을 썼지만
나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단 그옆에 누어있는 아버지 세티1세보다는 젊어 보였지만..
<엠병...>.
또 맡기고 들어온 카메라 생각이 났다.
그런데 노대통령이 그 아쉬움을 덜어 줄줄이야...
다시 밖으로 나와 고고학박물관 뜰에 서있는
거대한 람세스 석상을 보았다.
쿠푸왕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소홀했다면
람세스 2세는 어지간히도 자기 현시욕이 대단 했던것 같다.
베트남으로 치면 호치민이고 이북으로 치면 김일성인데
그의 실물인 미이라를
과학적인 안목으로만 전시실 한구퉁이에 보관하다니......
베트남에서 본 호치민의 궁전이며
말로만 들었던 김일성의 유해를 생각하며 착잡해 하는데
<잘 보셨어요?>
가이드인 홍은경 양이 어느틈에 옆으로 왔다.
<어, 안에도 못들어 오고 뭘했어?>
<뭘하긴요? 선생님 생각 하고 있었죠>
(하하 요런 여우...)
고고학 박물관에서 일반 관광객들도
무심히 지나치는곳이 있다. 작은 연못이다.
태양신을 숭배하던 고대 이집트에선 연꽃을 태양의 상징으로서
신성시 해왔다. 그리고 기원전 2700년에는 파피루스를
지중해 연안 지방에 수출을 해왔다.
말하자면 파피루스는 이집트 북부(델타지방)의 상징이며
연꽃은 이집트 남부(하 이집트)의 상징이다.
이집트 전체의 상징으로서 작은 못을 만들고
거기에 파피루스와 연꽃을 심은 것이다.
현재 이집트의 국화는 연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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