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야기

32년만의 포스코 방문기

첫날 2008. 2. 27. 09:19

2006년 11월 2일

 

아침 8시 50분

<간증드라마>작업이 끝났다. 9시까지 보내주기로 한 약속을

가까스로 지키게 된 셈이다.


그 길로 선고 산소엘 갔다.

오늘이 바로 선고의 36번째 맞는 기일이자 천주교에서 지키는 

위령의 날이라고 한다.

부득이 경섭이 한테 제사를 맡기고 포항을 가는 사유를 고묘했다.


포항제철에서 <꽃피는 팔도강산>팀을 공식 초청했다.

서울 홍보팀에서 KTX 표를 보내 왔다.그걸 가지고 천안아산역에서

일행과 합류하면 된다.


12시 34분

홍보팀의 박경대씨가 전화를 해왔다.

<지금 아산천안역에 들어가고있습니다  특실 2호차는 맨끝쪽입니다>

<알았어요>

이미 맨끝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박경대씨의 빈틈 없는 친절에 감사 했다.

12시 35분

일행과 합류를 했다.


1열차황정순.JPG

 

3장민호.JPG

 

2열차최은희.JPG

 

황정순 최은희 장민호 세분 선생님을 비롯하여

김수동감독과  민지환 김봉근 최정훈씨가 타고 있었다.

 

열차김봉근민지환.JPG

 

열차최정훈장민호.JPG

 

열차김수동.JPG

 

이게 얼마만인가?

그 해후란 인연의 줄 끝에 포항제철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최은희 선생님을 보필하는 영화배후 이향자씨와 황정순 선생님을 보필하는

조카인 황진영씨 그리고 전화로만 인사를 나눴던 포스코 신문의 박경대씨와

팀리더인 오훈갑씨와 인사를 나눴다.


각자의 집에서 일일이 승용차로 서울역까지 모시고 왔다는것, 그리고

만약을 위해서 간호사인 최명희씨를 대동했다는것도 이번 모임을 주도한

포스코의 빈틈없는 배려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원고 찾았어요?>

처음 인사를 나눈 조선일보 산업부의 최유식 기자가 옆자리로 와서 물었다.

<꽃피는 팔도강산> 대본을 교보문고에서 빌려 갔다가 분실했는데 그걸 묻는것이었다.

기자들이란 역시....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어디선가 얘길 들었죠>

교보문고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해야되나 말아야 되나..아직 결정을 못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열차 안에서 안내 팜프렛을 건네 받았다

<포스코 방문을 환영 합니다>

 

환영책자.JPG

 


세부일정 계획, 청송대(영빈관)안내도,숙소안내, 행사관련 주요전화번호, 차량배차현황...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신경을 쓴 흔적이 역역했다.

 


1시 50분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대구역황정순.JPG

 

포스코에서 버스가 나왔다.

<야 이렇게 좋은 버스는 평생 처음 타보는구나>

민지환씨의 얘기에 모두들 웃었다, 좌석 위치는 우등고속버스와 비슷했지만

의자들이 월등 고급스러웠다.


안내박경대.JPG

 

 

3시경에 포스코 홍보센터에 도착했다.

윤석만 사장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꽃피는 팔도강산>촬영 당시에 공보과 신입사원으로서 촬영팀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도 맡아 해준 윤석만씨...그가 어느틈에 포스코 사장이 되어 있었다.

 

복사_의_윤석만사장.jpg

 


<꽃피는 팔도강산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라고 생각 했습니다>

당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원이 100여명 밖에 안된다는

윤석만 사장의  얘길 듣고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느껴야 했다.

 

전광판.jpg

 

그래서 현관에서 맞이하는 그 현란한 전광판을 보고

일행은 흘러간 30년의 세월을 생각 하며

착잡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과거방명록.jpg

 

윤사장이 옛날의 방명록을 보여 주었다.

숨이 멎는것 같았다.

거기에 

<축 번영

포항종합제철 

김희갑 

황정순 

1974.6.22>라고 쓰여 있었다.

 

김희갑사인.JPG

 

<황선생님 이 사인 맞지요?>

윤사장이 농담처럼 말하자

<네 맞아요>

하면서 황정순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혔다.


<윤선생님도 사인 하나 해주십시요>

그 순간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었다 <조국 근대화> <민족중흥>

아아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것을 잊고 있었구나!

방명록에 싸인을 했다.

 

방명록에싸인.jpg

 

<조국 근대화의 초석

민족중흥의 견인차

아아 감개무량

2006.11.2 윤혁민>


<선생님 아까 우셨죠?>

연세탓일까? 

옛날을 회상하시면 곧잘 울음부터 나오신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고

황선생님에게 물었더니

<네 울어요. 왜 이렇게 눈물이 많은지...>

하시면서 웃었다.

 

복사_의_아까_우셨죠.jpg

 

포스코 역사 자료관으로 갔다.

 

복사_의_가2-1역사자료관.jpg

 

 

 

지난 4월달에 왔을때 안내 하던 박숙희씨와 홍대한씨가 있었다.

그땐 기브스한 다리를 절룩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왔었지...

 

복사_의_가4관람3인.jpg

 

 

그 보고를 받은 윤석만 사장이 이 모임을 계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경 모형앞에서 일행은 각자의 상념에 잠겼다.

 

크기변환_전경모형앞에서.jpg

 

당시에 백만톤 남짓의 제철을 생산 했는데 이젠 세계 3위

3150만톤이란다. 무려 30배의 성장이었다.

(고맙구나)

나도 황정순 선생님의 소박하고 진실한 소감과 같이 하면서 목젖이 뜨듯해 졌다.

나이 탓일까?


역사자료관을 나와 공장을 둘러 보았다.

<꽃피는 팔도강산 제작 출연진의

포스코 방문을 환영 합니다>

대형 전광판이 거기서도 빛나고 있었다


32년전에 <게스 라이타>라고 불리우든

제1고로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복사_의_제1고로앞에서.jpg

 

밖이 이미 어두어서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포항공대와 기타 학교들이 자리잡은

영일만 일대는 글자 그대로 <공원속의 별장>들이었다.


저녁 만찬장엔 이대공씨가 나타났다.

 

이대공이사장.jpg

 

포철 부사장을 거쳐 포스코 교육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대공씨는

일행을 보자 큰소리로 <이대공 과장입니다>해서 우리를 웃겼다.

촬영 당시 직책이 <공보과장>이었고 나를 인터뷰해서 사보 <쇳물>지에 싣기도 했다.


이대공 과장의 안내로 칵텔 파티장인  청송대의 <장미홀>로 들어섰다.

포스코의 영빈관은 <영일대>와 <청송대>로 나뉘어져 있는데

우리가 묵기로 된이곳은 장관급 이상의 VIP들이 주로 사용된다고 했다.

 

스캔0017.jpg

 

장미홀엔 촬영 당시의 흑백 사진들이 진열되어

<과연 포스코구나>하는 찬사가 저절로 나왔다.

방송 주관사인 KBS에서도 볼수 없는 자료들이었다.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탁위에 메뉴판이 있었다.

 

만찬메뉴겉.JPG

 


펼쳐보니 아까 제1고로 앞에서 찍은 기념사잔과 함께 메뉴가

적혀 있었다.

(사장의 각별한 관심속에서 어떤 직원이 또 콩 튀듯 팥 튀듯

했구나...하긴 30년후에 그가 사장이 못 되란법두 없지)

 

만찬메뉴안.JPG

 

 

또 있다

다음날 돌아오려는데 앨범을 하나씩 선물로 안겨 주었다.

(집에 돌아 와서 받은 선물은 예외로 하고)

방문 기년 사진첩이었다

 

 

앨범1.JPG

 

앨범2[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