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야기

<꽃피는 팔도강산> 그후 30년 어떤 책자에 쓴 연출자의 변

첫날 2008. 2. 26. 16:30
 

<어설프게나 동시녹음의 효시를 이룬 작품,>

<힘겨운 상황아래서도 꿈을 잃지 않는

군상을 그려낸 작가의 솜씨가…

국민들과 더불어 호흡한 행복한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은

74년 봄부터 75년 가을까지 일 년 반 동안 발송된 일일연속극이었다.


당시 조국근대화라는 구호아래,

공업화와 수출입국의 지상목표로,

나라모습이 크게 달라져 가고 있는 시기였으며

<하면 된다>와 <잘살아 보세>라는 유행어에 상징되듯

인내와 의지로서 희망찬 내일을 열어보자는 그런 시대였다.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을 목적으로 한

공업화의 현장을 국민들에게 홍보하고

근대화를 향한 국민들의 일체감을 조성한다는 것이

드라마의 기획의도였으니,

철저한 캠페인 드라마였던 셈이다.


그래서 김희갑, 황정순의 일곱 명의 사위들의 직업도,

과학기술연구소의 박사, 새마을극단의 단장, 낙농사업가, 상이군인,

포항제철의 제강부장, 울산공업단지의 직원 등으로

다양한 분포를 이루었으며,

당연히 드라마의 배경도 전국각지를 누빌 수밖에 없었다.

 

 


목요일은 일주분인 여섯 개를 녹화하고,

금요일에는 작가와 나는 배경이 되는 지방으로 출발하여

토요일까지 취재 및 야외용 원고작성과 촬영계획을 세우고,

토요일 밤에 도착한 연기자 및 스탭들과 합류해서

일요일과 월요일의 이틀 동안 현지녹화를 마치고

화요일에는 서울로 돌아와서 편집과 녹음을 끝내고

수요일에 총연습,

 

그리고 목요일에는 다시 일주일분을 녹화한다는

다람쥐 체바퀴 도는 듯한 주판위의 생활을

일 년 반 동안 계획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았다.


자칫하면 경직되기 쉬운 캠페인 드라마인데도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전국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식들을 걱정한다는 부모심정과

부모를 서로 모시려고 하는 자식들의 효심을 기본으로 깔고,

힘겨운 상황아래서도 내일의 꿈을 잃지 않고 있는 군상을

그려낸 작가의 솜씨에 있었다.

 

 

더구나 김희갑, 황정순의 부모를 정점으로 하여

(장민호, 최은희) (박노식, 도금봉) (황해, 김용림) (박근형, 태현실)

(문오장, 윤노정) (오지명, 전양자)의 여섯 커플과

한혜숙, 민지환,  김자옥 등의 연기자들이 장기간에 걸쳐서

벅찬 스케줄임에도 불구하고 일체감을 가지고 협력해준 것도 인상이 깊다.


세대의 카메라를 실은 녹화차로 지방을 다녔는데,

어설프나마 동시녹음드라마의 효시를 한 것도

지금생각하면 만용의 결과이긴 하지만

<하면 된다>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회를 거듭해 가면서

시청자의 관삼을 끌게 되니까

전국각지에서 우리고장에 와서 드라마를 펼쳐 달라는 요청이 쇄도한 것이며,

기업체의 홍보실마다 팔도강산 팀을 유치해 오라는

지상명령이 내렸었다고 들으며

나중에는 방송국 안에 무대선정을 위한 심의기구를 설치할 정도였으니

녹화를 하러 가는 곳마다 환영과 협조를 얻을 수가 있어서

항상 팀 전체에 의욕과 긍지를 불어 넣을 수 있었던 행운도 누렸다.


75년 봄에 대한항공이 구라파노선을 개설하여

서울에서 파리로 비행기가 뜨는데

그 첫 취항기에 초청을 받아서 드라마로서는 처음으로

유럽촬영을 하게 된 행운 등 누렸으며

더구나 그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역인 한혜숙이

외무부장관과 상공부장관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즉흥적으로 만들어 촬영한 것도

치기어린 시도였으나 낙수거리의 하나이며,

또 춘천의 공지천의 다리 밑에서

박노식의 유랑극단 장면을 촬영 하는데,

엑스트라를 동원하지 않아도 시민들이 모여들어 드라마에 참여해 주는 등,

말하자면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호의어린 지지를 쏟아준 점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순수한 드라마라기보다는

기행드라마였으며, 쇼맨쉽과 즉흥적 발상에 시종한 어설프고,

인기에 편승한 안이함,

그리고 너무 타이트한 스케줄에서 비롯된 허점이

여기저기에서 드러난 드라마였다고

자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허구를 위한 허구를 시도하지 않고,

소박한 행태이긴 해도 그 시대의 입김이라고 할까, 촉각이라고 할까,

국민들과 더불어 호흡을 함께 한 행복한 드라마였다고 생각된다.


글 : 김수동/KBS 예능국 제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