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서울에 있는 둘째아들이 전화를 걸어왔다.평상시와
다름없이 통화를 하는중에 갑자기 전화가 끊겼다.다시 다이얼을 돌리니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으시는것이었다.
<아, 전화를 받으시다가 쓰러지셨구나!>
이렇게 지레 짐작한 그 아들은 직장에서 도저히 자리를 비울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고속 도로를 달려 신갈엘 왔다.허겁지겁 문을 열어 보니 웬걸, 어머니는 큰 아들이 좋아 하는 빈대떡을 부치고 계시다가 오히려 의아해 하시더라는것이었다.
“아니 이시간에 웬일여?”
기가 막힌건 오히려 아들쪽이었다.
“아니 아까 전화 하시다가 중간에 끊어 지셨잖아요?”
“모올러.저절루 끊어 지든디..?”
“그 다음엔 왜 전화를 안 받으셨어요?”
“언제?... 그러구 나서 전화 안왔는디..?”
이상하다 싶어 전화기를 살펴 봤더니 코드선이 빠져 있더라는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건 바로 내 잘못이었다.컴퓨터 통신을 한다고 맨날 코드선을 뺐다 끼웠다 하다보니까 연결 부분이 헐거워져서 곧잘 빠지는걸 알면서도 천성적인 게으름 때문에 미쳐 고쳐 놓질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신갈리 생활 1년동안 어머니의 건강은 정말 다행스럽게도 현상을 유지해 주셨다.그 어머니를 위해서 큰 아들이 해드리는 일은 주일마다 휠체어에 모시고 성당에가서 미사 참례를 하는것이었고 신심이 두터우신 당신은 그 나드리 하나로 더 없이 행복해 하셨다.
“일주일만의 나드리 아뉴? 그냥 들어갈수 없잖아?”
“또 돌담집에 가자구?”
어머니는 미리 아시고 좋아 하신다.돌담집은 내가 사는 신갈 동네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풍덕천이란 동네에 있는 가든풍의 식당이었다.갈비집인데 음식 솜씨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정원에 야외식탁이 있어서 휠체어에 앉으신채 식사를 할수있기때문에 자주 들리는편이었다.
사실 어머니를 모시고 식당엘 가는것이 나한텐 가장 큰 고역이었다.방으로 모실려면 천상 차에서부터 업어서 모셔야 하는데 업어 모시다가 그집 종업원이나 손님들 한테 쪽(?) 팔릴까봐서가 아니라 도대체 업어 지지가 않기 때문이었다.
재작년 여름에 세째 동생네랑 어머니를 모시고 청평엘 갔는데 어머니를 업다가 수씨 앞에서 그만 망신을 당한 일이 있다.무거워서가 아니었다. 나도 비대한데다가 어머님도 비대 하시니 이건 꼭 고구마가 고구마를 업은것 같아 일어서자 마자 뒤웃둥거려서 도대체 중심을 잡을수 없는것이었다.
그렇다고 <가히 없는 은혜>를 입은 어머니를 메꽂을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낙하하는 어머니와 보조를 맞추려다가 결국은 함께 개굴창에 쑤셔박히고 말았다. 난 어머니가 어디라도 부디친게 아닌가 해서 사색이 됐는데 뒤에서 폭소가 터지고 더욱 기가 막힌것은 당신도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쑤셔박힌채 킬킬대고 계신것이었다.
“빌어먹을,아니 손잡이가 있어야 붙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