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만든 여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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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2015. 1. 1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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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둘째 수씨의 그 말이 나는 많은것을 내포 하고 있다는것을 느낌으로 잘 알고 있었다.

내집은 안산이고 집필실은 서울이기때문에 일에 쫒기거나 술에 취하게 되면 적당히 집필실에서 숙식까지 해버리는 내 약점을 찌른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 아내에 대한 타성화된 저항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시어머니 즐겨 모시고 싶은 며느리가 어디 있는가?

반은 팔자라고 체념을 하고 반은 내 하늘같은 남편과 사랑하는 자식들을 존재하게 만드신 분이라는 억지 긍정을 내세워 모시는 며느리도 있을것이다.

남의 입초사에 오를께 두려워서 시어머니 한테 잘 하려는 며느리도 있을것이고 이 담에 나 늙어 시어머니와 똑같은 입장이 되었을때를 생각 해서, 또는 이게 이집의 가풍이고 부덕이라는것을 자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싫어도 좋은척,좋아도 좋은척 모시는 며느리들도 없지 않아 있을것이다.

그러나 내 아내는 천성적으로 그런 융통성이 없었다.게다가 지병까지 생겼으니 <내 한몸 간수 하기도 귀찮아 죽겠는데 시어머니 모시는것도 싫고 시어머니 때문에 들락 거리는 그 많은 시댁 식구들,친척들 뒷바라지 하는것도 싫다>는식이었다.왜 이해가 안되겠는가?

그러나 어느 시어머니가 주변에서 늘 찬바람만 도는 며느리와 마음 편하게 한집에 살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큰집엘 왔다가도 큰 형수 큰 올케 눈치부터 살펴야 하는 동생들에게도 나는 할말이 없었다.

자연 어머니가 다른집에 가고 안계시면 그 노인네 지금 어디서 어떻게 계신지도 모르는데 내가 집에 들어가 두다리 쭈욱 뻗고 편히 자는것 조차도 죄의식이 생겨 집필실 한구석에서 또는 차안에서 술에 취해 그대로 자버리는 경우가 비일 비재하게 되었다.

둘째 수씨는 시아주버니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우회적으로 얘길 한것이지만 내심으로는 또 그런 경우의 재판을 염려 하고 있음이 분명 했다.

어쨌던 갑론을박끝에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한테 결정권을 드리기로 했다.나는 내심으로 코 웃음을 쳤다.

(이놈들아.어머니한테는 결정권을 드리나 마나야)

평소에 내집을 놔두고 이집 저집 가 계시는게 싫어서 불평을하면

<죽을땐 그래도 큰 아들 한테 와서 죽어야지..>

하시던 말씀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좋으나 싫으나 어머니가 큰집으로 가자고 하실께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뜻밖에도 둘째네 집으로 가시겠다고 선언을 하시는게 아닌가?

늬집으로 가야 하지만 경섭에미두 늘 아프구 또 14층에서 죽으면 어떡햐?

송장 끌어 내리느라고 심 들꺼 아녀? 준섭이네 집은 단독 주택이라 장사 치

루기두 편할꺼구 또 거긴 성당이 가깝잖어?“

둘째 부부가 1억짜리 복권이라도 당첨 된것처럼 와아-하고 박수를 치는 바람에 우리는 어쩔수 없이 폭소를 터뜨렸지만 <빙신 같은>장남은 둘째 수씨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그리고 표현할수 없는 어떤 허전함 때문에 그야말로 가슴이 막막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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