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꽃 피운 한국 도자기(4)
<그 아버지의 아들>
아버지 조소수옹의 외로운 주검 앞에서 가장 깊은 고뇌에 빠진 사람은
바로 막내아들인 조태권씨였다.
천성적으로 불도져처럼 밀어 부치는 스타일인 그는 도자기에 대한 소수옹의 집념에 대해서 가장 많이 반대를 해왔고 아버지의 일이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거침없이 혹독한 비판을 해왔었다.
선친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조태권씨는 또 하나의 가슴아픈 글을 발견했다
조소수 옹이 육필로 써 놓은 <도심(陶心)>이란 제목의 시였다.
-그늘진 곳 마다 않고
천부만뇌 흙을 빚어
선인들이 남긴 유산
도예 향기 그리워라
왜침으로 잠든 도예
광복으로 재연되니
이몸바쳐 불을 켜서
그 빛을 더 하리라-
아버지가 시를 썼다는 것도 그에겐 뜻밖이었지만 글자 한자 한자에 어려있는 망인의 집념 앞에서 생전 처음 조태권씨는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일에 대하여 가장 무심했으며 평생동안 아버지를 외롭게 만든 자신이야말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엄숙한 숙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부친이 못다한 일을 이루겠다는 결심으로
도예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러기를 몇 해,
그는 단순한 가업계승이 아니라 한국도자기의 세계화라는 대 명제를 걸고
전근대적인 제조방식을 탈피, 도자기 제조의 원료처리를 과학적으로 표준화하여 실용에 옮겼으며 비색의 청자는 물론 분청사기, 백자 등 전통 도자기를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그가 전통자기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다.
어디선가 조태권씨의 음성이 들려 오는 듯 했다.
“지금쯤은 아버님도 아마 웃으실겁니다. 제가 대를 이을 줄은 꿈에도 생각 을 못하신 분이니까요. 그리고 아버님은 전통자기를 고집하셨지만 저는 생활자기 쪽으로 전념을 하는걸 보고 저놈이 또 나한테 도전한다고 웃으시겠죠.”
당시 KBS-TV의 PD겸 감독으로 활약하던 이정훈씨는 TV 드라마 초창기때부터 나와 함께 일을 해온 오랜 친구였는데 마침 조태권씨와는 경기고등학교 선후배간이었다.
고치시에서 돌아온 나는 이정훈씨의 주선으로 조태권씨와 술 자리를 같이 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기획중인 작품 얘기가 나왔다.
“그럼 어차피 일본 취재가 선결이겠군요. 취재를 하신다면 안내는 물론 그 비용까지 제가 다 대겠습니다”
조태권씨가 선뜻 제안을 했다.
다들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젊은 기업가의 순간적인 객기로 생각 하면서 농담으로 받았다.
“말씀은 고맙지만 돈이 많이 들텐데요?”
“얼마나 들 것 같습니까?”
“글쎄요. 난 국내에선 거지 같이 살아도 외국에 나가면 폼 잡는 버릇이 있어서...일류 호텔 구경도 좀 해보고 일류 술도 마셔봐야...”
“좋습니다”
“좋습니다? 하하 ”
우리는 그냥 웃고 말았다.
그리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다음날 조태권씨가 연락을 해왔다.
사무실로 찾아 갔더니 돈 봉투부터 내밀었다.
미쳐 생각지 못한 거액이었다.
술 자리에서 흘려 버린 얘기로 치부 하고 있던 나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거 받아도 되는겁니까?”
“물론이죠”
“왜 주는거죠?”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던 조태권씨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한국인의 자존심을 되살리자는 의미에서 선생님과 선고의 뜻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뿐일까?
사업 하는 사람이 아무런 대가 없이 선뜻 거액을 내 놓을수 있을까?
조태권씨는 내 심중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이 말을 이었다.
“드라마를 쓰시던 소설을 쓰시던 그건 제가 상관 할 바가 아닙니다. 좋은 작품만 써 주십시오”
“...........?”
“저는 단지 작가들이 문화인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를 하고 있고 그만큼 국민들의 문화 의식이 향상되면 선고께서 해오시고 저와 제 동업자들이 현재 하고 있는 외로운 작업이 꼭 장사 속으로만 하는것이 아니고 누군가 해야될 일을 대신 한다는 인식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것 뿐입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어제 술자리에선 일류 호텔이니 일류 술이니 객적은 소리를 했는데 놀러 다니는것도 아니고 취재 여행인데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인숙에서 자면 어떻고 노숙을 하면 어떻습니까?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좋습니다. 그까짓 술 안 먹으면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이 돈은 너무 많습니다”
“아닙니다”
조태권씨가 손을 저었다.
“아니, 그래서 반쯤 도루 내 놓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돈이면 내가 데리구있는 제자 놈들도 다 데리구 갈수가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제자들이 몇분인데요?”
“셋입니다.”
후에 <마지막 승부> <바람의 아들> <천사의 키스> <푸레시던트> 최근엔 <메이퀸>으로 한국방송대상을 탄 손영목과 <내일은 사랑> <약속> <영웅신화> <의가형제> <산넘아남촌에는2>를 쓴 김지수. 그리고 꽁트 작가로 성공, <행복한 바보>등 꽁트집을 낸 정현축이 당시의 내 집필실 <드라마 패밀리>에서 힘겨운 작가 수업을 하고 있었다.
요즘 처럼 해외 여행이 쉬운 시절이 아니었다.
같이 일본엘 가자고 그러면 놈들이 얼마나 좋아 할까?
“전 운이 좋아서 남 보다 일찍이 몇 차례의 해외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그런데 이 친구들은 단 한 번도 외국에 나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작가들도 국제적인 견문과 국제적인 감각 없이는 글 쓰기가 쉽지 않을겁니다. 또 효율적인 취재를 위해서 조수도 필요 하구요”
조태권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것이 제자들과의 동행을 마뜩치않게 여기는줄 알고 웃으면서 덧 붙였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놈들한테 선생님 덕분에 최초의 해외 경험을 했다는 추억 거리 하나를 마련해 주고 싶은 심정도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 비용까지 추가로 제가 마련 하겠습니다”
그가 즉답을 피한 것은 나 한사람의 경비가 아니라 추가 되는 세사람의 경비 까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것은 오히려 이쪽이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이 돈으로 충분 합니다”
“아닙니다. 돈 걱정은 마시구요.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나는 ‘조건’이란 말에 긴장을 했다.
그러면 그렇지 날 언제 봤다고 선뜻 거액을 내 놓겠는가?
이제 비로소 장사꾼 기질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입에서 나온 ‘조건’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저는 사업하는 사람들이 문화인들을 돕는다하면서 생색을 내는 일을 제일 싫어합니다. 글쓰는데 제가 지원을 했다는 얘기는 비밀로 해 주십시오.”
나는 조태권씨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 보았다.
“또 도자기 얘기가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제가 상관할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구성하는 작품의 가장 작은 부분에서일지라도 아버지나 저희들의 얘기는 모델로 삼지 말아 주십시오”
부끄럽게도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조태권씨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문화에 대한 그 열정과 순수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당시 나는 멋 모르고 시작한 사업 도산으로 극도로 생활이 어려웠다.
반신불수의 어머니, 아내의 지병,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딸의 학비등
가정적으로 산적한 문제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조태권씨가 1차로 건네준 돈 만으로도 알뜰하게 쓴다면 <드라마 패밀리> 식구들이 계획된 취재 여행을 충분히 할수 있었기 때문에 2차로 보내온 돈을 내가 가용에 보태 쓴다고 해도 그것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수가 없었다.
조태권씨의 진심과 그 순수를 위해서도 나는 단 한푼도 목적 이외의 곳에 돈을 지출할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 여행에 동반해줄 전문가가 필요 했다.
어차피 우리 모두 도자기에 대해선 문외한들이었기 때문에 동행 하면서 자문해줄 그 방면의 교수가 한분 필요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문사 문화부에서 일을 하고있는 하고있는 오랜 친구를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