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이집트편편상(9)출애급기

첫날 2007. 11. 12. 06:29
 

피라미트 관광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산 엘 하가르>엘 간다고 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타니스>로,

신왕국 때에는 피 라암세스(‘라암세의 집’이란 뜻)라 불린 곳이다.

카이로에서 동북쪽으로 250키로미터

4시간쯤 걸리는데 때로는 12시에도 문을 닫으니까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차 안에서 가이드북을 보니

<관광객도 물건 사기를 강요하는 이집트인도 없는 유적에서

혼자만이 고대 이집트의 감상에 빠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곳>이라고 했다.


또 소설 <람세스>를 쓴 <크리스티앙 자크>는

<처음 이곳을 찾았을때 나는 모든 것에서부터 멀어져

바람에 쓰러진 어느 황페한 세계에

완전히 고립된듯한 느낌이었다>

라고 썼다.


(나도 거기 가서 그런 기분을 느껴봐?)

그건 아니었다.

그럼 그곳이 홍해의 시발점이라서?

천만에.


내심으로 내가 기대 했던것은

그곳이  야곱 이후 400년동안 그 후손들이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룬후

모세의 인도로 애급을 탈출한

<출애급기>의 출발점이라는 데 있었다.


(내가 누구인가?

비록 휴면 신자지만 본명이 모세 아니든가?

헛 어흠....)


카이로 시내를 벗어 나자 차창 밖으로 사고가 난 차가 보였다.

 


 

한번 사고가 났다하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들어와 사고가 났는지 모른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러구보니 연도의 가로등 하나도 반반한게 없다.

 


 

커브길에서도 속력을 줄이지 않아

가로등을 치고 뺑소니를 쳤을게 뻐언 하다.

 


 

종교경찰 관광 경찰이 따로 있으니 물론 교통경찰도 있다.

그러나 달리는걸 보면 교통 경찰도 소용 없는것 같다.



 

우리는 카이로-이스말리아 산업 도로를 달리다가

중간 길로 빠져서 바로  고센 지역으로 들어갔다.

 


 

비옥한 땅 풍부한 물 

항상 맑고 따뜻한 날씨가 이 지역의 특징이란다.

성경에는 <야곱이 그 가족을 이끌고 애급에 거주한 땅>이라고 써 있다.

 


 

그런데 경찰이 검문을 마치더니 앞장을 섰다.

캄보이를 하는모양이었다.

싸이렌을 울려대며 씽씽 달려간다.

 


 

<어어? 뒤에도 경찰차가 따라와요>

몸을 돌려 카메라를 들이 댔지만 잘 찍히지 않았다.

 


 

앞에 4명

뒤에는 스리쿼터에 6명

 

치안이 취약한 지역이어서 관광객이 오면 경호를 하게끔

내규가 정해졌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김정일이 때문에 경찰 5명 한테는

경호를 받아 봤지만

앞뒤로 10명의 경호를 받아보긴 평생 처음이네)

좀 게면적어지고 미안했다.


그런데 더욱 미안한 일이 생겼다.

 


 

여기도 우리처럼 우측 통행인데

선도차가 갑자기 역주행을 시작 했다.

비포장인 오른쪽 길을 놔두고 왼쪽 길로 들어선 것이다.


싸이렌을 울리는것도 모잘라

비키라고 고함을 치는소리가 우리 차에까지 들렸다.

 

덕분에 모든 차들이 역주행을 했으니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끝까지 따라 붙었다.

 

<어이 통역해>

차에서 내리면서 홍은경씨 한테 말했다.

 

<당신네들은 임무라지만 난 이집트에 처음 온 관광객으로서

감동을 받았다. 이건 얼마 안되지만 더운데 음료수래도 사서

먹도록>

갑자기 국회의원이라도 된듯 싶었다.

 


 

<얼마 주셨어요?>

박철이가 물었다.

<30불>

<앞으로 한국 관광객이 와서 대접을 받을려면

30불 이상씩 줘야 되겠는데요?>

그렇게 되나?

엠병이다

 

각설하고

 


이곳은 그야말로 델타지방 오지에 있는 유적지다.

경찰들이 캄보이 하기 전에는 우리 기사도 물어물어 찾아왔지만

실제로 카이로 택시 운전사도 이 지역 지리에 어두울 정도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사방 4키로 미터 정도의 언덕이 몇 개가 모여 이루어 졌다는 넓은 유적터.

그런데 그것이 다 인공으로 쌓은 벽돌이란다.

해마다 있는 홍수를 피하기 위해서

홍수 수면보다 높은 언덕을 쌓고 그 위에 신전을 지었다는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 무너지고 돌들만 어지럽게 남아 있다.

 


 

깨여진 오벨리스크(태양신의 숭앙탑)와 조각난 신전의 기둥들

발굴된 오벨리스크 흔적만도 7개나 된다니

한 때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 했을것이다.


그나마도 보존이 된게 있다면

람세스 2세의 석상정도라고 해야할지.....

 


 

우물터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벽돌로 인공산을 만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우물물을 마시며 한숨을 돌렸겠지.

 


 

그러구보면 4천여년의 유대인의 역사는

유랑의 역사라고 해도 관언이 아닐것이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했지만

다시 광야에서 보내야 했던 40여년의 역사가 그러했고,

앗시리아와 바빌론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던 세월이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결국 로마 제국에 의해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2000년을 보냈고

히틀러에 의해 600만명이 수용소의 굴뚝 연기로 사라졌으니 

어찌 유랑과 박해의 역사가 아니랴!

그러나 유대인들은 뛰어난 민족이었다.

그들은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가난함을 극복 했고,

그들에게 닥친 불운을 축복으로 바꾸어 냈다.

 


 

비록 오랜 시일이 걸렸지만

유대민족은 이 폐허에서 힘차게 비상 했던것이다.